기획전 특별전-2 2025 제18회 전주국제사진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특별전 2

얽힘_ ENTANGLEMENT

Artist_ 권은경, 김미경, 김연화, 김혜식, 박정선, 신은주, 이정희, 조성옥. 최영귀, 최인숙
기획_ 이정희 / 한국여성사진가협회(KOWPA) 초대전 / 장소_ 전주교육대학교 아트스페이스

KOWPA(한국여성사진가협회)는 ‘Entanglement(얽힘)’을 주제로 전주 포토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신유물론을 기반한 기획으로 인간과 물질, 비물질이 얽혀 실제에 변화를 주는 현상에 대한 사적 탐색이다. 삶이 하나의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흙, 물, 공기와 같은 자연과 역사와 개인의 의식과 기억에 상호 연결되는가에 대한 작업이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얽힘 속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고 재 맥락 화 된다.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물질의 얽힘 뿐 아니라 물질과 비물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신적 세계의 얽힘까지 두루 바라보려 한다. 여기에는 물리학적 의견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현상도 포함된다. 분명히 실재이지만 질량도 없고 크기나 부피도 없는 실재의 행위와 초월 그 너머의 존재 인식, 윤리적 자리까지 포함된다.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성복 시인의 ‘불화하는 말들’을 읽었다. 시인의 말이 예언처럼 들린다. 예술가가 하는 일이란 묻혀버린 것들, 잊혀진 것들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사진작업은 우리를 매순간 다르게 살게 해준다. 때때로 실성한 중얼거림 같기도 하고 환각이나 착란 같지만 이 모호한 웅얼거림이야말로 가장 시적인 울림을 준다.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건너뛰는 아우라의 영역, 관념뿐인 ‘대상에 틈을 내어 그 내부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업 말이다.

권은경 Candy Kwon

미래에서 온 메시지- 눈·물 씨앗 (Seeds of Snow · Water)

전 세계적으로 집중 호우의 빈번화, 태풍 강도의 상승, 기이한 가뭄과 산불 등 급격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원초적인 씨앗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어릴 적, 씨앗은 수확 후 그 해 받아서 다음 해에 파종하는 것으로 씨앗의 존재성 의심을 한 적이 없었지만,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미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다고 한다. 그는 눈이라는 물리적인 냉각상태를 위해 겨울이라는 계절을 선택하고 씨앗 저장소가 있는 노르웨이 스발바르와 아이슬란드의 북극이라는 장소성에 의미를 두고 현재의 모습을 담아냈다.

김미경 Kim MiKyoung

Der Wille zum Leben 생명의 의지

이곳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한때는 분명한 경계를 지녔던 집이 이제는 숲과 함께 변해가고 있다. 나무와 덩굴은 벽을 타고 오르며 공간을 가로지르고, 창은 있지만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지만, 그것을 둘러싼 세계는 끊임없이 스며들고, 얽히며 변해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겨진 것들은 서서히 형태를 바꾸고, 스며드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어떤 것은 무너지고, 어떤 것은 다시 자란다. 벽과 뿌리, 창과 나뭇가지, 인간과 타자는 서로를 침범하며 경계를 허물어간다. 그리고 그 사이,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얽히며 생명의 흔적이 되고, 또 다른 가능성을 틔운다. 이곳에서 남겨진 것은 단순한 잔재가 아니며, 스며드는 것은 단순한 침입이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를 변화시키고, 흔적으로 남아, 새로운 생명의 일부가 된다. 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흔적이 되고, 생명의 의지는 끝없이 이어진다.

김연화 Kim YeanHwa

Shapes of traces (흔적의 모양들)

Shapes of traces작업은 철거 현장에서 무너지고 해체된 건물의 잔해들을 관찰하면서 시작되었다. 녹슨 철사, 부서진 톱날, 찌그러진 파이프, 부서진 돌 등은 한때 누군가의 삶과 공간과 시간을 담는 시대의 흔적이자 증거이다. 발터 벤야민’은 사소하고 버려진 사물에도 과거의 삶과 사회의 흔적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잔해들을 수집하고, 나의 기억과 연결된 사물, 자연물 등을 함께 소환해 쌓는 방식의 작업을 진행했다. 건물을 짓듯이, 다양한 사물의 기억을 층층이 쌓으며 ‘재구성’을 시도했다. 과거의 흔적(잔해 물)이 현재(경험적 오브제)의 맥락과 결합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 과정에서 파괴와 소멸로 여겨졌던 것들이 오히려 재생과 순환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 작업을 통해서 공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재발견하고, 잃어버린 흔적과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며, 그것들이 미래로 열려 있는 존재적 가치를 품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김혜식 Kim HyeSik

눈 감은 사이 꽃은 피고지고

신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랑에게 이별을 던진다. 그래놓고 차마 바라볼 수 없을 땐 눈을 가린다. 이별을 던져놓고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라니. 동생이 떠난 지난 가을 후 네팔로 갔다. 거기에선 자연스럽게 모든 사랑이 떠나가게 둔다. 기도가 끝나면 다시 꽃이 되어 돌아옴을 믿게 된다. 이별은 한사코 다시 올 것을 믿게 하고 하염없이 꽃을 바치게 한다. 사람의 수보다 많은 신이 존재하는 나라, 거기에선 이별은 주술이고 사랑은 잠시 현혹이다. 신이 눈을 가린 사이에도 꽃은 피고진다.

박정선 Park JungSun

움, Womb

“움”은 풀이나 나무에서 새로 돋아나는 싹을 의미하며, 동시에 영어 단어 womb은 ‘자궁’을 뜻한다. 같은 소리를 공유하는 이 두 단어는 생명의 탄생과 시작, 움직임과 쉼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아우른다. 움은 움직임이며, 촉발이고, 작업하고 싶은 욕망이다. 반면, womb은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 머물고 싶은 쉼,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을 담고 있다. 여러 사회적 경험 속에서 그녀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형성해왔다. 여행과 칩거를 반복하며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일기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 과거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모습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고, 그 안에서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었다. 일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단서를 발견했고, 이는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녀의 삶과 감정을 담은 작품은 Red, Blue, Yellow라는 세 가지 소제목으로 구성된다.

신은주 Shin EunJu

시간을 만지다

기억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매 순간이 기억으로 축적된다. 그 기억은 사라짐과 드러남을 반복하는 그 순간의 감정과 시간성이 함께 저장되며 실제 존재하는 객관적 이미지와는 다른 주관적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한 부분적으로 기억되거나 어렴풋이 색이나 느낌으로만 기억되기도 하고, 변형되거나 점차 소멸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을 형성하는 과거의 시간들은 지나간 시간이 아닌 현재 본인의 존재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물로써 과거 속에서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시간에서 채집된 이러한 기억은 앙리 베르그손이 표현한 이미지 기억처럼 시각적 이미지뿐만이 아닌, 과거의 모든 상황을 포함한다. 이 작업은 기억을 거듭 반복하고 구상하여 그리움으로 침체된 심상을 치유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이정희 Lee JeoungHee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는 증거 (Variation of Text)

첨단 가상시대에 텍스트는 소멸할 것인가. 텍스트는 읽고 쓰는 매개자가 존재할 때 의미가 발생한다. 문자 발명 이후, 텍스트는 그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무한대의 시공간을 넘어 유동해왔다. 텍스트는 물질인 동시에 정신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텍스트는 이성복의 텍스트로 변환되고 이성복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로 재구성되고 다시 텍스트를 읽는 관람자의 사유 속에서 새롭게 변주된다.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재구성되는 사유의 흐름이야말로 ‘우리가 영혼이 있는 존재’임을 증거하는 것 아닌가. 사진과 함께 제시되는 텍스트는 수많은 미궁으로 들어서는 은밀한 길이다. 이 분방하며 모호한 기호들은 진부한 세계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실타래를 우리에게 건네준다.

조성옥 Cho SungOk

회전목마의 비행

이 시리즈는 젊음과 시대를 앞서는 현대감각이 어우러진 강남에서 여성성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패턴의 연속성 속에 제약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보여 주려 하였다. 오늘날 여성들은 오랜 시간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살아왔지만, 상상력을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이 패턴들은 단순한 형태의 반복을 통해 전체를 구성하며, 우주의 무한함과 개체의 유한함이 공존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AI를 활용하여 패턴을 배열하는 과정은 마치 기계적인 작업처럼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작품 속에는 여전히 개인적인 감정과 상상의 세계가 담겨 있다. 마치 기계와 인간 사이를 넘나드는 듯한 이중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기술과 상상력을 활용하여 내면의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고, 이번 작업은 단순히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나만의 새로운 자기 표현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최영귀 Choi YoungKwi

모노로그 3

존재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와 함께 지내는 나날들, 결코 잊혀지지 않고 지 워지지 않는, 가끔은 흔들리고 있는 영과 혼을 찾아 나선다. 사냥이 취미였던 그가 먼 길 떠나며 내 가슴에 아프게 박았던 대못들을 가지고 여기 숲속에서 그리고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이다. 숲은 구체적인 공간이나 그가 즐기던 오브제들을 아크릴판 위에 그리고 새겨서 또는 3D프린팅을 하거나 유리공예로 만들어서 희미 해진 기억과 함께 구축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가며 나는 실제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를 느끼며 호흡한다. 돌이킬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

최인숙 Choi InSook

동두천시 상봉암동 8번지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버려진 낡은 건물, 이곳은 수많은 여성이 성병 검진을 이유로 강제로 끌려와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던 인권 유린의 장소였다. 철창에 격리된 여성들 모습이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같다고 해서 당시 미군들 사이에선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린 곳이다.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국가가 주한미군을 상대로 하는 기지촌 성매매를 사실상 조장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인 물증 가운데 하나다. 수용소에 감금된 여성들은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고용량의 페니실린 투약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어야 했고 투약과 치료에 대한 공포로 수용소를 탈출하려던 여성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공녀에서 일제강점기의 위안부 그리고 분단국가에서의 양공주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은 늘 한국사회의 어두운 역사적 현실을 반영해 왔다. 국가 권력에 의해 훼손된 여성들의 통곡과 절규, 공포와 두려움은 수용소 같은 구조와 잔해들 속에 아직도 여전히 묻혀있다. 낡고 폐허가 된 이 버려진 공간 속에서 과거 그곳에 갇혔던 여성들의 처참한 삶을 생각하며 한국 근현대의 발전 속에서 벌어진 이 공간의 아픔이 우리사회에 성찰과 기억의 장소로 남길 희망하며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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